[독서] 라틴어 수업_한동일

2021. 3. 14. 17:01자기 개발 🔎/① 독서

 

 

 

 

라틴어 수업_한동일

독서 기간: 2021.03.09 ~ 2021.03.14

별점: ★


소개

<라틴어 수업>은 저자 한동일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수업은 라틴어를 가르치는 외국어 강좌가 아니라 고대 로마부터 현대 이탈리아까지 아우르는 유럽의 역사, 문화, 철학, 지리, 사회에 이르는 통합 강좌였다. 나아가 이 강의를 통해 본인의 인생과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의 배운 터라 많은 학생이 말한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이와 같이 질 높은 수업이 있다니... 비록 현장에서 전달받지 못했지만, 책으로나마 저자의 수업을 접하여, 글을 통해 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이 소중한 책을 선물해준 라선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정말 좋은 부분이 많아 글이 길어질 수도 있을 거 같다.)

 


기록

 ①

"사람을 가르치며 배운다."
세네카의 <도덕에 관한 편지>

 

어느 분야의 최고 수준을 달성한 전문가를 보면 항상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학습의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 내게 큰 동경의 자세다. 저자 한동일은 본인이 그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아리만이 아니라 어미닭 역시 배우고 깨닫는 바가 있을 거라 그는 항상 생각한다.

 

 

"Salvete, mei socii!" (살베테, 메이 소치이)

안녕하세요, 나의 친구들(동료들)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법학 창시자인 아르네리우스 교수는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이렇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 우리는 그저 모두 친구이자 동료인 샘이다.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한동일은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학생 200여 명의 동료이자 친구로 본인을 생각했다. 수많은 본인의 동료들을 통해 여전히 자신 안에 남아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과 아픔들을 되새겨보았고, 대화하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한동일에게 그들은 늘 고마운 존재다.

 

-

"(p.57)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로 생각합니다."

 

 


(p.25) 
처음부터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거시적인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 생각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목표 없이 살아간다며 스스로를 지탄했던 시간도 많았다. 삶의 긴 여정 중.. 가끔은 젠체하고 싶은 욕망으로 배움을 시작한 유치한 순간들도 있었다. 한동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거시적 목표로 향해가지 않는다 말한다. 이 말이 왠지 모르게 작은 위로가 된다. 뭔가를 시작하고 해 나가는 것에는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다. 오히려 거창한 무언가가 있다면 시작하기 전부터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젠체하고 싶은 유치한 마음이어도 충분하다. 모든 시작은 이 위대한 유치함으로부터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 큰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p.34)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평소와 달리 잉여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그냥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 봄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는 겁니다.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입니다. 이것은 이 단어(nebula 네불라)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것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형상도 들여다 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의 운동장에는 어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습니까?"

 

 

내 마음속 아지랑이는 나를 힘들게 하지만 정말 보잘것없는 고민일 뿐이다. 또한 이 책에서 아지랑이가 어떤 의미로 쓰였졌던지 간에 내게 아지랑이는 너무 주위를 기울인 탓에 커져버린 불안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그중 가장 큰 아지랑이는 당연 '현재에 대한 불안과 불확신'일 것이다. 잘하고 있는 걸까? 는 걱정이 종종 너무 앞서 나를 괴롭힌다. 현재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미래, 꿈, 목표에 대한 걱정도 비례하게 커져간다.

 

종종 내 불안을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불안은 억겁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시때때로 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오히려 용기를 낸다.

 

"

과거의 내가 큰 성취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잘 해내고 있어. 너무 큰 걱정하지 마. 지금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은 내가 주의를 기울인 탓에 아른아른 거리는 아지렁이일 뿐이야.

"

 

앞으로 내게 주어진 과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내게 아지랑이는 불안 같은 것이었지만 앞으로의 내 마음속 아지랑이는 내게 또 다른 기회를, 봄바람처럼 따스한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음을 확신한다.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

 

공부하는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에는 즐거움보다 고통이 더 크다. 저자 한동일은 30여 년간 공부하며 물리적인 어려움이든 실리적인 어려움이든 육체적인 고통이든 간에 늘 괴로움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공부는 중도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처럼, 공부하는 노동자는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곡 몸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한다.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된다.

 

 

내가 항상 습관적으로 해오던 말이 있다.

"매일의 성실이 지금의 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꾸준함이 내 미래를 만들어 줄 것이 아는 걸 난 항상 믿어."

 

내 본태가 성실함을 따르는 사람인지라 나는 이 책에서 이 파트가 제일 마음에 와 닿았다. 결국 공부는 성숙을 배워가는 좋은 과정이다. 힘들게 공부하는 과정 중에서 나와 소통을 경험하고 열등한 나와 조우할 수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가엾은 인간보다 더 가엾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공부하는 과정 속에 나를 알게 되며 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나 역시 저자 한동일과 같이 공부하는 노동자이다. 공부라는 노동을 통해 지식만 얻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나와 마주하는 노동자다.

 

 

 


(p.55)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틀입니다.

 

-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방식도 달라진다."
(영화 컨텍트 중)

 

몇 달 전 영화 '컨텍트'를 봤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외계어를 익히자 그들의 사고방식과 시간관을 지닐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언어에는 그 사회의 문화나 가치관 등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언어를 알면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라틴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에는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로마인들은 편지를 쓸 때다. 로마인은 수신인이 편지를 받아 읽을 때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 전해진다고 생각해서 그때를 맞춰 시제를 작성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로, 과거는 과거완료로, 미래는 능동 미래 분사로 표현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주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가치를 인정하는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로마인과 라틴어에 담겨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p.66)
삶이란 끊임없이 내 안의 매리튬(장점)과 데펙투스를(단점) 묻고 선택하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나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쉽게 알 수도 없지만 섣불리 규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어제의 장점이 오늘의 단점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단점이 내일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어느 무엇 하나 명확히 답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겉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나 자라기 마련이다.

 

 

 


 

라틴어는 정말 복잡하고 머리 아픈 언어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습관, 공부하는 태도를 라틴어를 통해 가르치는 것 같다. 아마도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인 라틴어를 익히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끈기라면 웬만한 공부들은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힘든 일을 겪고 이겨낸 사람은 그 후의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이것이 도전과 성취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도전한 후 성취해내 본 사람만이 또 다른 도전으로 향해간다. 개인의 성장을 통해 자발적으로 성취해가는 것.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은 참으로 개인적인 성장보다 타인과의 비교가 많은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고 점수를 매기고 여러 경쟁 구도를 만들어 공부하기를 시킨다. 유럽 대학의 평가방식은 대부분 절대평가로 진행되며 평가 언어는 모두 긍정적인 표현이다. '잘한다'라는 연속 스펙트럼 속에서 가능성을 열어둔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남보다' 잘했음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p.77)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세상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다 보면 초라해지기 쉬워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하든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에는 그런 사람이 한 번도 초라해본 적 없는 사람보다 타인에게 더 공감하고 진심으로 그를 위로할 수 있는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카르페 디엠. 내게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웃긴 에피소드를 지닌 문구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농사와 관련된 은유로서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구다. 이는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이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의 길을 잘 갈고 있을까?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꿈(목표)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내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내 길의 끝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노력하고 성장해가며 성취하는 무한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그래서 내 끝은. 나의 한계점은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외

 

 

 

 

(p.83)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한다.
우리는 어떤 실패의 경험에 대해 지나치게 좌절하고 비판하기 일쑤다. 이것은 '실패한 나'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실패했을 때 또 다른 '나'의 여집합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집합들이 잘 해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나아가는 것이 겸손한 자세가 아닐까요?

 

 

(p.131)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가운데는 외적인 요인도 많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뿌려놓은 태도의 씨앗들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p.134)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p.156)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부모님이 남긴 향기는 제 안에 여전히 살아있지만 그다음을 만들어가는 것은 제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억을 밑거름 삼아 내 삶의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p.259) 상처는 꼭 피해야 할 어떤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상처는 나의 약점이나 단점을 확인시켜주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p.297) 어떤 새도 다른 새처럼 날지 못해 안타까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모두들 자기의 방식대로 하늘을 날고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나와 다른 모습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p.309) 전공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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