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부지런한 사랑_이슬아

2021. 1. 7. 00:01자기 개발 🔎/① 독서

부지런한 사랑_이슬아

독서 기간: 2020.12.31 ~ 2021.01.03

별점: ★


동기

 

1️⃣ 이슬아라는 사람

작가 이슬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였다.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을 보던 중, 누군가가 공유한 게시물을 읽게 됐고 그것은 경향신문에 발행된 이슬아의 기사였다. 재능과 꾸준함에 대한 글이었는데, 그녀의 글에는 계속 읽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한참을 그녀의 피드 속 글을 읽다가 그만두었다. 거기서 끝. 내 흥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 당시 감동받았던 게시물
www.instagram.com/p/CBeajhPJxSy/?igshid=13xetcsqs2m4v

 

 

2️⃣ 에세이

나는 왜 에세이를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독서에 처음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도 에세이 덕이였다. 아마 나는 누군가의 삶을 엿듣는 느낌이어서..?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통해 내 태도를 점검하고 배워간다.

 

(과거 이슬아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꺼졌었지만) 이 에세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슬아의 에세이기 때문이다. 과거 내게 글의 힘을 보여준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읽으며 특히나 좋았던 파트는 <쉬운 감동, 어려운 흔들림-p.140-143>이다. 유튜브에서 강아지의 죽음 영상을 보며 슬퍼하는 아이들을 보며, 비건의 삶을 살아가는 이슬아가 느낀 바를 기록했다.

우리는 예능이나 드라마나 영화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여러 감정을 느끼지만, 극적인 비극을 본 후에도 일상으로 복귀한다. 숱한 미디어 콘텐츠가 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은 어제의 내가 변함없이 오늘의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정화 역할을 한다. 라캉은 안정화를 비난한다. 안정화란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고착시키는 부정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동물 영상들이 범람하는 한편에는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수산의 현장이 있다. 그라인더에 갈리는 병아리와 살처분당하는 돼지의 얼굴들도 있다. 나는 이쪽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조회수는 높지 않다.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망각을 위한 카타르시스의 기능'이 거기엔 없다.


동물을 가장 많이 귀여워하는 시대이자 동물을 가장 많이 먹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갈등에 직면하는 것은 어렵지만, 후엔 가장 쉬운 방법>

그녀는 비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다른 점을 생각하며 공감했다. 사실 내게도 '안정화'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그렇다. 나는 때론 갈등이 일어나도 '내 방식이니까 침범하지 마. 나는 바뀌지 않을 거야'라는 태도를 취할 때가 있고 종종 갈등 상황을 외면했었다. 대화를 회피하고, 자리를 피하고.... 나는 내 감정을 위해 타인의 감정을 외면했다. 즉, 갈등에 직면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친언니가 갈등은 직면해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나는 애를 쓰며 노력 중이다. 이제는 내 감정을 돌보기 위해 타인의 감정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슬아의 책에는 또 이런 문장이 나온다.

 

"(p.67) 나사는 아는 듯하다. 관계가 회복되어도 때로는 상처 부위가 아주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그의 문장을 잊지 않고 싶다. 그 가능성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다음 문제도 성숙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가는 것. 이 방식만이 성숙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있다.

 


 

책은 그녀가 글쓰기 수업과 느낀 바를 기록한 내용이다. 글쓰기 피드백에 대한 그녀의 고민이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한 경험이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글을 쓸 때에 "사실에 충실한 문장"을 연습시킨다. 거기엔 가치판단을 지양한다. 피드백 역시 이렇게 해야 한다. 나에겐 추한 글처럼 다가올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바꾸는 글이 되기도 한다. 즉, 나의 가치는 피드백에서 중요치 않다. 좋고, 나쁘다는 단어는 너무 모호하니까.


 

이 책의 제목이 부지런한 사랑인 것은..

아마 그녀가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부터 지금의 나이까지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바로 스승들의'부지런한 사랑'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외 문장 조각

 

  • (p.25) 로맹 가리의 엄마는 어린 로맹 가리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너는 커서 톨스토이가 될 거야! 빅토르 위고가 될 거야!”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로맹 가리도 결국 로맹 가리가 되었다. 반복적인 글쓰기와 함께 완성된 최고의 그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 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 (p.49) 내 가슴팍 위 쇳덩이에 관해 솔직히 말해보려던 참에 상대방의 가슴팍 위 쇳덩이가 보여 입을 다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되는 감각 같았다.

  • (p.66) 아무리 자라도 한 사람이 천하무적이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새로운 문제로 새롭게 괴로워할 테고, 새로운 만회의 방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 (p.136) 모두에게 말투가 있듯 글 쓰는 사람 모두에게 '글투'가 있다.

  • (p.165) 사실 나는 글쓰기만큼 재능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반복하면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 (p.199)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의 글은 일기 이상이어야 한다는 걸. 여기에서 '일기 이상'이란 자신 이외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다.

  • (p.204) 자기 글에 관한 의견을 받을 차례가 오면 글쓴이는 입을 닫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따라다니며 첨언할 수 없다고 어딘을 말했다.

  • (p.268)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하거나 이상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걸. 다들 좋은 놈과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을 자기 안에 데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인간은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다-p.276)

  • (p.275) 두 문장의 관계를 섣불리 확정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나는 그 사이의 접속사를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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